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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 농경과 초원유목문화의 완벽한 결합: 위안상두(元上都) 유적지

2014-08-06 11:40 인민망 편집:왕추우

[인민망 한국어판 8월 6일] 중국 원대(元代) 도성 유적지인 위안상두(元上都) 유적지는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시린궈러맹(錫林郭勒盟) 정란기(正藍旗) 동북 약 20km 떨어진 우이목장(五一牧場) 경내, 산뎬허베이안(閃電河北岸 )에 위치한다. 중국 북방 기마민족이 설립한 이 초원도성은 중원 농경문화와 초원유목문화가 절묘하게 결합된 산물로 인정받았으며 역사학자들은 이탈리아 고성 폼페이와 아름다움을 겨룰 정도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원세조(元世祖) 쿠빌라이(忽必烈) 가 황제 즉위 전 건축되기 시작한 위안상두 유적지는 몽고 헌종 6년(1256년)에 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카이핑푸(開平府)라고 불렀다. 쿠빌라이 즉위 후 카이핑부를 상두(上都)라 부르고 상징(上京) 또는 롼징(灤京)이라 불리기도 하며 원조(元朝) 여름의 수도이다.

원조 황제는 해마다 여름 중요한 대신들을 데리고 이 곳으로 피서를 와서 정무를 처리했는데 이 때문에 궁성을 원림식의 이궁별관(離宮別館)으로 지었다. 성은 궁성, 황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둘레는 9km, 동서 2050m, 남북 2115m에 달한다. 궁성의 네 귀퉁이엔 궁전이 있다. 안에는 수정전(水晶殿), 홍희전(鴻禧殿), 목청각(穆清閣), 대안각(大安閣) 등 전각 누각과 대사(台榭, 고대 중국에서 토축이 높은 대기 위에 세워진 누각건축)가 있고 강물을 성안으로 끌어 들여 만든 연못이 있다.

황성은 궁성을 둘러싸고 안에 도로가 잘 정비되어 질서 정연하며 남반부에는 관청, 관저 소재구역, 동북과 서북에는 건원사(乾元寺)와 용광화엄사(龍光華嚴寺)가 건축되어 있다.

외성은 흙을 이용해 지었다. 황성 서북면, 북부는 황제가 감상하던 어원(御苑,황실의 정원)이고 남부는 관청, 사원, 작업장 소재 지역이다. 성 밖 동, 남, 서쪽엔 관샹(關廂, 옛날 성 밖 큰 거리와 그 일대) 지역, 시내상점, 민가, 곡창이 소재한다.

명나라 영락(永樂) 초기 묵히는 성벽 및 건축 토대는 여전히 지표에 남아 있다. 몽고어로는 이 성을 '자오나이만쑤머(兆奈曼蘇默)'라 부르는데 이는 '108개 묘(庙, 사당)'라는 뜻으로 성지(城址)에 건축된 것이 많아 와전된 것이다.

상두(上都)에는 불사, 도교 사원, 이슬람 사원 등 종교 건축물이 있으며 종교활동도 매우 왕성했다. 1260년, 쿠빌라이는 파스파(八思巴)를 '제사(帝師)'로 봉하고 상두 서남쪽에 파스파(八思巴) 제사사(帝師寺)를 지었다. 도교는 각 종파 모두 도궁(道宮)을 지을 정도로 상두에서도 매우 영향력을 끼쳤다. 상두에는 늘 상인이 왕래해 일찍부터 회회사(回回寺)가 있었다. 상두 주민 중에는 이슬람교, 경교(景教) 등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상두(上都)는 원조의 여름 수도로 북방 종교 흥성의 중심이자 다원 문화 교류의 중심이기도 했다.

2012년 6월 29일 36회 세계유산위원회는 회의를 거쳐 중국 위안상두 유적지를 <세계유산명단>에 등재했다. (번역 감수: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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